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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진흙과 피의 거리에서 묻다: 왜 우리는 여전히 타자를 밀어내는가 마틴 스코세이지의  '갱스 오브 뉴욕' 을 보고 나면, 입안에 비릿한 쇠 냄새와 먼지 맛이 감도는 듯합니다. 1860년대 뉴욕, 파이브 포인츠의 진흙탕 위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사투는 단순히 '미국 건국사'의 이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. 그것은 '먼저 온 자'와 '나중에 온 자' 사이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증오의 연대기입니다. 영화 속 '빌 더 부처'는 외칩니다. 자신들은 이 땅을 위해 피를 흘린 진정한 주인이며, 갓 배에서 내린 아이리시 이민자들은 우리의 일자리와 신념을 갉아먹는 해충일 뿐이라고. 이 서늘한 외침은 160년이 지난 오늘날, 대상만 '아시아계'로 바뀐 채 우리 곁을 떠돌고 있습니다.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도 아시아계를, 혹은 그 어떤 소수자를 감히 혐오할 수 있을까요? 영화의 마지막, 징병 거부 폭동의 포화 속에서 '네이티브스'와 '이민자'의 구분은 무의미해집니다.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와 포탄 아래에서 그들이 지키려던 '순혈주의'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음을 카메라는 묘사합니다. 오늘날 우리가 아시아계를 향해 던지는 날 선 시선들 역시, 훗날 뉴욕의 스카이라인 아래 묻힌 이름 없는 묘비들처럼 허망한 것이 아닐지 생각해보게 됩니다.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'나중'이며, 누군가의 '이방인'일 뿐입니다. 심층 Q&A: 영화가 던지는 열 가지 질문 Q1. '빌 더 부처'가 아이리시를 혐오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? 단순한 인종 차별을 넘어, 자신의 생존 기반인 일자리와 정치적 영향력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'실존적 공포'가 혐오로 발현된 것입니다. Q2. 영화 속 '네이티브스'와 현대의 '아시아계 혐오'의 공통점은? 외부인을 '우리의 ...